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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아이 때문에 화가 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저 자신 때문에 화가 나는 겁니다. 36개월, 21개월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면서 이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충격이 었습니다. 밥상 앞에서, 어린이집 가는 현관 앞에서, 장난감을 집어 던지는 그 순간마다 제가 욱했던 이유가 전부 저한테 있었다는 걸, 그제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기질 차이를 몰랐던 저의 실수
아이들은 저마다 타고난 기질(temperament)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여기서 기질이란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 감정의 강도, 적응 속도 등 선천적으로 타고난 행동 패턴을 의미합니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도 형제마다 기질이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도 직접 겪어보니 이게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뼈저리게 알게 됐습니다. 21개월 둘째는 밥을 먹다가 중간쯤 되면 어김없이 식판을 놀이터로 만들어버립니다. 국에 밥을 말고, 이 칸에서 저 칸으로 옮겨 담고, 급기야 손에 묻은 걸 머리에 바릅니다. 제가 직접 밥을 차리는 집이다 보니 그 상황이 터질 때마다 속에서 뭔가가 올라왔습니다. 36개월 첫째는 또 달라서, 밥은 잘 먹는데 갑자기 장난감을 던지는 걸 즐깁니다. "던지는 거 아니야"라고 하면 멈추는 게 아니라 이쪽으로 던지면 돼요? 이쪽은요? 하며 경계를 탐색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제가 정해둔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화를 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기준은 아이의 발달 단계나 기질과는 전혀 상관없이 제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이었습니다. 발달심리학(developmental psychology) 관점에서 보면, 21개월 전후 아이의 식사 중 탐색 행동은 감각 통합 발달 과정의 일부입니다. 쉽게 말해, 음식을 만지고 섞고 흘리는 행동이 그 나이 아이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드러눕는 아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 약속, 사회적 규칙, 이런 걸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더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그 이면엔 제가 늦으면 안 된다는 저의 불안이 훨씬 크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이 표출된 행동이었는데, 저는 그걸 규칙 위반으로만 봤던 겁니다. 분리불안이란 애착 대상과 떨어지는 상황에서 아이가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영유아기에는 매우 자연스러운 정서 반응입니다.
아이의 기질과 발달 단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제 잣대만 들이밀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 기질(temperament): 선천적으로 타고난 행동·감정 반응 패턴으로, 훈육으로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습니다
- 발달심리학적으로 36개월 전후 아이의 탐색·실험 행동은 정상 발달 범위입니다 (출처: CDC Child Development)
- 분리불안은 영유아기 정서 발달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강압보다 공감이 효과적입니다
- 아이의 기질과 부모의 성향이 맞지 않을 때 부모가 더 쉽게 화를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정 조절과 자발적 동기, 두 마리 토끼
제 경험상 화를 참는 것과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좀 다릅니다. 감정 조절(emotional regulation)이란 단순히 화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올라오는 원인을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대응 방식을 선택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억누르기만 하면 결국 더 큰 폭발로 이어지고, 그 폭발의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갑니다.
자발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외부 강압이나 보상이 아닌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행동 의지를 말하는데,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의 자기 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자율성이 보장될 때 자발적 동기가 극대화됩니다(출처: Self-Determination Theory). 아이를 억압할수록 오히려 내면의 동기가 꺼진다는 겁니다.
매일 반성을 하면서도 좀처럼 변하지 못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면, 결국 화가 터지는 순간들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전날 잠을 못 잤거나, 일이 많아 스트레스가 쌓인 날이거나, 이미 작은 일로 기분이 상한 뒤였습니다. 아이가 뭔가를 잘못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이미 가득 차 있던 제 감정이 아이의 행동을 트리거로 삼아 터진 것에 가깝습니다. 화는 아이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저로부터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이한테 화를 참는 게 너무 힘든데,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요?
A. 제가 직접 써봤는데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화가 나기 전에 자리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차 안, 화장실, 베란다 어디든 30분 정도 물리적으로 공간을 분리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상당히 가라앉습니다. 억누르려고 하면 오히려 더 터지는 경우가 많아서, 일단 자리를 피하는 걸 먼저 연습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Q. 아이 기질이 나랑 너무 달라서 이해가 안 돼요, 어떻게 하죠?
A. 저도 첫째가 저랑 너무 달라서 처음엔 이게 내 아이인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기질은 바꾸려 하면 할수록 아이도 부모도 지칩니다. 대신 '이 아이는 원래 이렇게 태어났구나'를 전제로 깔고 대화를 시작하면 화가 나는 빈도 자체가 줄어드는 걸 경험했습니다. 완전히 이해 못해도 괜찮습니다, 인정만 해도 달라집니다.
Q. 훈육을 아예 안 하면 버릇없는 아이가 되는 거 아닌가요?
A. 훈육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 올라간 상태에서 퍼붓는 말이 문제입니다. 과한 야단은 아이의 기억에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아니라 '그 순간의 공포'만 남긴다는 게 여러 심리학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입니다. 훈육은 부모가 감정을 가라앉힌 뒤에도 충분히 할 수 있고, 오히려 그때 더 효과적입니다.
Q. 연년생이라 두 아이를 동시에 상대하는 게 너무 벅찬데 정상인가요?
A. 제가 36개월, 21개월 연년생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드리는 말씀인데, 정상이 맞습니다. 두 아이의 기질이 다르고 발달 단계도 다른 상황에서 두 명을 동시에 감당하는 건 어떤 부모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벅차다는 감각 자체가 지금 제대로 육아를 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결론
매일 반성하는데 좀처럼 변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반성이 늘 '화를 덜 내야지'에서 끝났던 게 문제였습니다. 화의 방향을 아이에서 저 자신으로 돌리는 것, 이 관점의 전환이 진짜 시작점이었습니다.
아이는 잘못이 없습니다. 타고난 기질대로 세상을 탐색하고, 경계를 시험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행동이 제 기준과 충돌할 때 화가 나는 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제 감정 조절의 문제입니다. 이걸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인정하고 나서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욱할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일단 숨 한 번 고르고 '지금 화나는 게 아이 때문인가, 나 때문인가'를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려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6deEf9GhH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