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36개월, 21개월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아빠가 그려줘"라고 울면서 매달리는데, 둘째는 뭐가 되든 혼자서 막 그립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둘째에게 "탐구를 정말 잘해요"라고 하셨을 때 많은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첫째에게 너무 많이 해준 게 오히려 아이에게서 혼자 해내는 능력을 빼앗은 건 아닌지, 이 글은 그 고민에서 시작됐습니다.
과잉개입이 아이의 자립심을 막는 이유
첫째가 어렸을 때 저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블록이 안 쌓이면 얼른 잡아줬고, 밥 흘리면 바로 닦아줬고, 신발 끈 못 묶으면 "내가 해줄게" 하고 먼저 손이 나갔습니다.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둘째를 키우면서 비교가 됐습니다. 둘째는 제가 신경을 많이 못 썼는데, 오히려 혼자서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잡으면 오래 탐구하고, 잘 안 돼도 금방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너 언제 이렇게 컸냐"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죠.
이걸 발달심리학에서는 '과잉개입(Overparenting)'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과잉개입이란 아이가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를 부모가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양육 태도를 말합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문제가 생기기도 전에 해결이 되니, 스스로 해결해본 경험 자체가 쌓이지 않는 겁니다.
한국육아정책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부모의 과보호적 양육 태도는 아이의 자기효능감(Self-efficacy) 발달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꾸준히 지목됩니다(출처: 한국육아정책연구소). 여기서 자기효능감이란 "나는 이걸 해낼 수 있다"는 내면의 믿음으로, 이게 충분히 형성돼야 아이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게 됩니다.
고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장지덕 목장지폐(人長之德 木長之弊)', 큰 나무 아래에서는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그늘만 만들어 주면 아이가 햇볕을 받을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는 거죠. 제가 직접 두 아이를 비교해보니 이 말이 이렇게 느껴질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아이가 위험하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황에는 즉시 개입해야 합니다. 그 외의 경우, 특히 성장 과정에서 생기는 일반적인 시행착오라면 잠시 못 본 척 기다려 주는 것이 진짜 도움입니다. 아이가 블록을 쌓다가 무너뜨리고, 또 다시 쌓아보는 그 과정이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키웁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실패나 좌절 앞에서 다시 일어서는 심리적 회복 능력을 말하는데, 이건 부모가 대신 해줘서는 절대 길러지지 않습니다.
- 아이가 스스로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린다
- 실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양육이다
- 위험·도덕 문제가 아닌 성장 과정의 실수는 개입 대상이 아니다
- 좌절 경험이 쌓여야 회복탄력성이 생긴다
아들과 소통이 안 된다면 먼저 아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저도 처음엔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을까"라는 생각을 수백 번 했습니다. 특히 첫째는 제가 뭔가 설명을 시작하면 이미 딴 데 가 있거나, 하지 말라는 걸 정확히 하고 있거든요. 화가 나죠. 근데 이게 아이가 나쁜 게 아니라 아들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발달신경학적으로 보면, 남아는 여아에 비해 전두엽(Prefrontal Cortex) 발달이 느립니다. 여기서 전두엽이란 충동을 조절하고, 행동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뇌의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입니다. 쉽게 말해 "이거 하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는 회로가 아직 덜 완성된 상태라는 거죠. 그러니 "하지 말랬잖아"라는 말은 아이에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거기다 언어 발달(Language Development)도 여아보다 느린 경우가 많습니다. 언어 발달이란 말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성숙해가는 과정인데, 이게 느리면 엄마가 빠르게 여러 말을 쏟아낼수록 아이는 그냥 멍해집니다. 대답을 못 하는 게 무시가 아니라 처리가 안 되는 겁니다.
미국소아과학회(AAP)는 영유아기 훈육에서 짧고 명확한 언어 사용, 신체적 근접, 일관된 규칙 적용을 핵심 원칙으로 권고합니다(출처: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제 경험상 이건 정말 맞는 말입니다. 멀리서 길게 설명하면 첫째는 이미 다른 세계에 가 있고, 가까이 가서 이름 부르고 눈 맞추고 짧게 말하면 그나마 반응이 다릅니다.
아들 육아에서 제가 직접 써봤는데 효과가 있었던 순서는 이렇습니다. 가까이 간다 → 이름을 부른다 → 눈을 맞춘다 → 짧게 단호하게 말한다 → "엄마가 뭐라고 했지?" 확인한다 → 결과를 반드시 확인한다. 이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단계입니다. "30분 후에 정리 안 하면 치운다"고 했으면 정말로 치워야 합니다. 흐지부지 넘어가는 순간 아이는 어느 규칙이 진짜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요즘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화를 참는다고 속으로는 삼키는데, 표정에 다 나온다는 거요. 아이는 부모의 얼굴을 보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합니다. 말로는 아무 말 안 해도 어두운 얼굴 자체가 아이에게 불안을 전달합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그러니까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너그러운 마음이 표정부터 바꾼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말보다 표정이 먼저라는 걸 아이 둘을 키우고 나서야 제대로 느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이를 기다려 준다는 게 그냥 다 놔두면 되는 건가요?
A. 아닙니다. 기다림에는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위험한 상황이나 도덕적 문제가 생겼을 때는 즉시 개입해야 하고,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겪는 실수와 시행착오에 한해서 기다리는 겁니다. 그냥 다 방치하는 방임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Q. 첫째한테 너무 많이 해줬는데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요?
A.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갑자기 다 끊으면 아이가 혼란스러워하므로 작은 것부터 기다려 주는 연습을 시작하면 됩니다. 신발 신기, 옷 입기처럼 일상적인 행동부터 스스로 할 시간을 주고, 잘 해냈을 때 충분히 인정해 주는 것이 자기효능감 회복의 시작점입니다.
Q. 아들한테 훈육할 때 긴 설명이 왜 안 먹히나요?
A. 남아는 여아보다 언어 발달과 전두엽 발달이 느린 경우가 많아 긴 말을 동시에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짧고 단호한 단문으로 말하고, 아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다시 말해보게 확인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Q. 화를 안 내려고 노력하는데 표정 관리가 안 됩니다. 어떻게 하죠?
A. 저도 지금 그 문제와 싸우고 있습니다. 말을 참는 것보다 숨을 고르는 것이 먼저라는 조언이 실제로 도움이 됐습니다. 거친 숨은 거친 표정을 만들고, 숨을 한 번 고르는 동안 "지금 성장 중인 거지"라는 관점 전환이 표정부터 바꿔줍니다. 3초만 멈춰도 다릅니다.
결론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아이의 성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에게 너무 많이 해준 게 결국 혼자 해내는 경험을 빼앗은 거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금 당장 완벽하게 바꾸겠다는 생각보다, 오늘 하나만 기다려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아이가 신발 신는 거 한 번만 기다려 보는 것, 그림 그리다가 "아빠가 그려줘" 할 때 "네가 한번 해봐"라고 한 번만 말해보는 것. 그 작은 기다림이 쌓여서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 줍니다. 좋은 부모는 더 많이 해주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부모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mZiiXxTfUs&list=PLyQinpQgqZJKF7cvT3ExfQbfYk4D8Eiqu&index=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