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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처음에는 야경증이라는 말조차 몰랐습니다. 첫째 아이가 13개월쯤부터 밤 12시만 되면 발악하듯 울기 시작했는데, 길게는 3시간씩 이어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안아주려 해도 밀어내고,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으니 이게 병인지 아닌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는 입원을 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고, 저도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 같지 않아서 진지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기가 울어요

    야경증과 혼란각성, 어떻게 다를까요

    야경증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의문이 이것이었습니다. '증'이 붙으면 병인 건지, 아니면 그냥 증상인 건지. 정확히 말하면 야경증은 혼란각성(Confusional Arousal)의 한 형태입니다. 혼란각성이란 꿈을 꾸는 렘(REM) 수면이 아닌, 꿈꾸지 않는 깊은 수면인 비렘(NREM) 수면 중에 뇌가 완전히 깨지 못한 상태로 부분적으로만 각성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자고 있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중간 어딘가에 걸쳐 있는 상태입니다.

    세 살 미만 아이들이 밤에 울고 버둥거리는 경우를 혼란각성이라고 부르고, 세 살 이상 아이가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과 함께 과격한 신체 반응까지 동반할 때를 야경증, 영어로는 나이트 테러(Night Terror)라고 구분합니다. 제 첫째는 당시 기준으로 보면 혼란각성에 해당했지만 증상 자체는 야경증 못지않게 심각했습니다.

    중요한 포인트 하나를 짚자면, 야경증은 잠든 지 1시간에서 4시간 사이에 발생하고, 그중에서도 잠든 지 두세 시간 내에 일어나는 경우가 가장 많습니다(출처: 대한수면연구학회). 저희 아이도 예외 없이 8시에 잠들면 12시 무렵에 터졌습니다. 거의 시계처럼 정확했습니다.

    왜 갑자기 생기는 걸까요, 원인을 따져보면

    야경증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많고, 수면 부족이나 스트레스가 증상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뒤 갑자기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낯선 환경에서 오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야경증 증상이 심해지는 대표적인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어린이집, 유치원 입소 직후처럼 생활 환경이 급격히 바뀐 경우
    • 주 양육자가 바뀌었거나, 복직 등으로 돌봄 체계가 달라진 경우
    • 몸이 많이 아팠거나, 수면마취를 동반한 시술을 받은 직후
    • 아데노이드 비대(Adenoid Hypertrophy)로 인해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 아데노이드 비대란 코 뒤쪽에 있는 림프 조직이 커져서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을 유발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 비타민 D 결핍이 있을 때. 비타민 D는 수면 조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실내 생활이 길어지거나 자외선 차단제를 상시 사용하는 경우 결핍되기 쉽습니다

    제 첫째도 돌이켜보면 딱 그 시기, 환경이 크게 달라진 직후부터 증상이 시작됐습니다. 그때는 그 연결고리를 전혀 몰랐습니다.

    한밤중에 아이가 발악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게 가장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처음 겪는 부모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안아주려 하는데, 사실 이게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야경증이 비렘 수면 중에 일어나는 부분각성(Partial Arousal) 상태이기 때문에, 아이는 실제로 공포를 느끼는 게 아닙니다. 부분각성이란 깊은 수면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채 뇌의 일부만 활성화된 상태로, 이 시간 동안 아이는 기억을 형성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다음 날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 상황에서 공포를 느끼는 건 아이가 아니라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였습니다. 저와 아내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을 따라 자극을 주지 않기로 합의했습니다. 첫날 밤, 울기 시작해도 반응하지 않고 기다렸더니 1시간 만에 혼자 진정하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둘째 날은 30분,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밤이 평화로워졌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변화였습니다. 아기를 믿고 자극 없이 기다리는 것이 이렇게 빠르게 효과가 날 줄은 몰랐거든요.

    다음 날 아이에게 "어젯밤에 그랬어"라고 묻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아이는 기억 자체가 없는데 계속 그 이야기를 꺼내면 오히려 불안감만 높아지고 증상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수면위생을 지키는 게 결국 핵심입니다

    수면위생(Sleep Hygiene)이란 양질의 수면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지켜야 할 생활 습관과 환경 조건 전반을 말합니다. 야경증 예방에 있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피로할수록 부분각성 빈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규칙적인 취침 시간과 충분한 수면 시간 확보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만약 매일 거의 같은 시간에 증상이 반복된다면, 예상 시간보다 30분 전에 미리 아이를 깨워 다시 재우는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뇌의 수면 패턴 자체를 한 번 리셋하는 원리입니다. 다만 이 방법은 매일 실행하기 쉽지 않으니, 평소 수면위생을 탄탄하게 유지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한의원에서 야경증 치료를 위해 침 치료를 권유받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이 부분에 회의적입니다. 현재까지 야경증과 침 치료 사이의 유의미한 연관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연구 결과를 찾기 어렵습니다. 야경증이라는 용어 자체가 한의학에서도 자주 쓰이다 보니 혼동되는 경우가 있는데, 특수 치료를 알아보기 전에 평소 다니던 소아과 선생님과 먼저 상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소아수면장애 분야에서도 수면위생 개선과 행동 치료가 일차 권고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출처: 대한소아과학회).

    야경증은 대부분의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물론 중학생 이후까지 증상이 이어진다면 수면 전문의 상담이 필요하지만, 유아기와 학령기 초반에 나타나는 야경증은 병보다는 발달 과정의 한 단면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저처럼 한밤중에 암담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부모에게, 자극을 줄이고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버텼던 그 시간이, 지금 평화로운 밤을 만든 출발점이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아이의 증상이 심각하거나 오래 지속된다면 반드시 소아과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youtube.com/watch?v=dPbrdk0XqpY&t=16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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