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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아들을 낳기 전까지 육아가 왜 어렵다는 건지 반쯤은 이해를 못 했습니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잠이 부족한 건 알겠는데, 그게 다인 줄 알았습니다. 36개월 첫째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육체적인 힘듦이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은 그 막막함이 진짜 어려움이라는 걸요.
행동경계 —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범위를 재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하지 말라는 걸 반복하면 고집이 세거나 말을 안 듣는 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첫째를 지켜보면서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던지지 말라고 하면 아이가 갑자기 그만두는 게 아니라, 조금씩 작게 던지면서 "여기는? 이건 괜찮아?" 하고 묻더라고요. 처음에는 말을 무시하는 건 줄 알고 화가 났는데, 관찰해 보니 이건 무시가 아니라 탐색이었습니다. 아이가 허용 범위의 경계를 직접 몸으로 확인하려는 행동이었던 겁니다.
이것을 전문적인 표현으로 행동 범위 측정(behavioral boundary testing)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행동 범위 측정이란 아이가 자신에게 허용된 행동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반복적인 시도를 통해 직접 확인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어른 눈에는 반항처럼 보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인지적 탐색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시기 남자아이들에게 특히 이 행동이 두드러졌습니다. "하지 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그럼 이건요?"라고 다시 테스트하는 식입니다. 이때 필요한 건 "엄마 화나려 그래"라는 감정 신호가 아니라, "한 번 더 하면 이렇게 된다"는 명확한 결과의 예고입니다. 아이에게 시그널이 아닌 행동으로 답해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국내 아동발달 전문가들의 연구에서도 만 2~4세 아동은 규칙의 범위를 반복적 행동으로 확인하는 경향이 강하며, 이 시기의 훈육은 결과를 사전에 예고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출처: 육아정책연구소).
욕구파악 — 아이가 원하는 게 내가 원하는 것과 달랐습니다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는데, 아이에게 필요한 걸 저를 기준으로 판단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아이가 불안해할까 봐 안심을 많이 주려 했는데, 첫째는 사실 "잘했다"는 말을 훨씬 더 목말라했습니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욕구 투사(need projection)와 관련이 있습니다. 욕구 투사란 자신이 강하게 느끼는 심리적 결핍이나 욕구를 타인도 동일하게 느낄 것이라고 자동으로 가정하는 인지 오류를 말합니다. 부모가 어린 시절 애정 결핍을 경험했다면, 아이에게도 무조건적인 사랑 표현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가 실제로 원하는 건 인정 욕구(need for recognition) 일 수 있습니다. 인정 욕구란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이 타인으로부터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심리적 동기를 말합니다.
제가 돌아보니 저도 비슷한 오류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이거 잘했지?"라고 물어올 때 "잘하든 못하든 사랑해"라고 답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가 원하는 답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잘했어, 대단하다"는 말을 원했는데, 저는 엉뚱하게 안심만 시키고 있었던 겁니다.
아이마다 강하게 작동하는 욕구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면, 같은 훈육이라도 전혀 다른 효과가 납니다. 아이를 관찰하면서 지금 이 아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게 소속감인지, 인정인지, 자율성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훈육의 출발점이 됩니다.
아이의 핵심 욕구를 파악할 때 살펴볼 만한 단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칭찬받았을 때 유독 눈이 빛나는 경우 → 인정 욕구가 강한 편
- 혼자 있으면 불안해하거나 무리를 따라다니는 경우 → 소속 욕구가 강한 편
- 스스로 결정하려 하고 간섭받으면 반발하는 경우 → 자율성 욕구가 강한 편
저는 이 기준으로 첫째를 다시 보기 시작했고, 확실히 인정 욕구 쪽이 강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훈육보다 인정을 먼저 채워주는 방향으로 바꿨더니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공조훈육 — 혼자서는 진짜 한계가 있었습니다
15개월 차이 연년생 둘을 키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저 혼자 감당이 어렵다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동생이 형을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훈육의 난이도가 두 배가 됐습니다. 웃기기도 하지만, 형이 경계를 테스트하면 동생이 그 뒤를 따라 똑같이 테스트하니 끝이 없었습니다.
이때 제가 체감한 것은 훈육의 효과가 한 사람의 일관성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공조(collaborative discipline)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공조 훈육이란 아이가 생활하는 여러 환경—가정, 어린이집, 놀이 공간—에서 아이를 대하는 어른들이 동일한 기준과 메시지를 일관되게 적용하는 훈육 방식을 말합니다. 아이는 어른마다 기준이 다르면 그 빈틈을 아주 빠르게 찾아냅니다.
아내와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 과정에서 제대로 느꼈습니다. 제가 "이건 괜찮다"고 했는데 아내가 "안 된다"라고 하면, 아이는 둘 중 더 유리한 쪽으로 빠르게 이동합니다. 반대로 부부가 훈육 방향을 사전에 맞춰두면, 아이도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규칙이 명확할수록 아이도 덜 흔들립니다.
체력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저는 화를 내는 이유가 아이 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잠이 부족하거나 피곤할 때 훈육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육아 연구에서도 양육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서 조절 능력 간의 상관관계가 높다고 보고됩니다. 아이를 잘 가르치려면 부모 자신의 체력 관리가 전제 조건입니다(출처: 한국아동패널).
결국 공조 훈육이 작동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 부부 간 훈육 원칙에 대한 사전 합의
- 어린이집·유치원 교사와의 지속적인 소통
- 양육자의 체력과 정서 상태 관리
아들을 키우는 게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마다, 저는 다시 이 세 가지로 돌아옵니다.
제가 가장 많이 반성한 건 내가 어렸을 때 분명히 같은 행동을 했는데, 막상 아이가 하면 빨리 없애려 했다는 점입니다. 어렸을 때 저도 저럴 이유가 있었을 텐데, 기억은 안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훈육은 아이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어른이 먼저 아이의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화내지 않는 아빠가 되자는 다짐을, 오늘도 다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