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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엄마가 잠깐 자리를 비운 것만으로도 울음을 터뜨릴 때, 솔직히 처음엔 아빠로서 좀 서운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건 아빠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보내는 발달의 신호였습니다. 아이가 엄마에게만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시기를 어떻게 함께 넘어갈 수 있는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엄마만 찾는 건 분리불안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저희 둘째가 21개월쯤 됐을 때였습니다. 아내와 잘 놀다가 아내가 화장실만 가도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제가 안아주려고 손을 내밀면 오히려 더 크게 울면서 "엄마!"를 외쳤고, 저는 그 자리에서 그냥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게 아빠를 거부하는 건가 싶어서 상당히 마음이 쓰였어요.
그런데 신기한 게 있었습니다. 엄마가 아예 출근해서 집에 없다는 걸 아는 날에는 아이가 전혀 울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만 그랬거든요. 처음엔 이게 왜 그런지 몰랐는데, 찾아보니 이게 바로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하더군요. 분리불안이란 주요 애착 대상과 떨어질 때 아이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 반응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있던 사람이 없어졌을 때" 느끼는 극심한 불안감입니다.
출처: NHS에 따르면 이 분리불안은 생후 6개월에서 3세 사이 아이들에게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정상 발달 과정입니다. 아이가 아빠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지금 세상이 무섭고 익숙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신호인 거죠.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이 대상영속성(object permanence)입니다. 대상영속성이란 눈앞에서 사라진 것도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능력인데, 이 능력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아이에게는 엄마가 사라지면 정말로 '없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출처: HealthyChildren.org (미국소아과학회)도 생후 9개월 전후에 분리불안이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15~18개월 사이에 다시 강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시기는 정말 일시적이었습니다. 지금 둘째는 엄마가 먼저 출근해도 "엄마 안녕~" 하고 손 흔들고는 저를 보고 씩 웃습니다. 아이가 나쁘게 변한 게 아니라, 그 시기가 그냥 그런 시기였던 겁니다.
- 분리불안은 생후 6개월~3세 사이에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발달 반응입니다
- 대상영속성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 엄마가 사라지면 극도로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 피곤하거나 배고프거나 낯선 환경일 때 증상이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 엄마가 처음부터 없는 날보다, 있다가 사라졌을 때 반응이 더 큰 것은 전형적인 양상입니다
주양육자와 애착발달, 아빠가 할 수 있는 것들
아이가 엄마에게 매달리는 또 다른 이유는 주양육자(primary caregiver)와의 애착 형성 차이에 있습니다. 주양육자란 아이의 일상을 가장 많이 책임지는 사람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 밥을 주고 재우고 달래주는 일을 반복적으로 해온 사람입니다. 아이의 뇌는 이 사람을 가장 예측 가능한 안전 기지로 등록하게 됩니다.
하버드대 아동발달센터가 강조하는 반응적 상호작용(serve and retur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아이가 소리를 내거나 손을 뻗거나 울 때, 어른이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고 안아주는 방식으로 응답하는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아이는 그 사람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됩니다. 엄마가 주양육자인 가정에서 아이가 엄마를 먼저 찾는 건 이 경험의 누적 차이 때문입니다.
제가 경험상 느낀 건, 아이가 아빠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아빠와의 경험이 아직 쌓이는 중이라는 거였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는데, 억지로 안으려 하기보다 매일 작은 역할 하나를 꾸준히 맡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는 목욕 후 로션 바르기와 자기 전 책 한 권 읽기를 담당했는데, 이 두 가지만 반복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둘째가 목욕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저한테 왔습니다.
애착 형성(attachment formation)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짧고 반복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경험이 쌓일수록 아이는 아빠도 자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서서히 학습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건 시간이 좀 걸리지만 분명히 됩니다.
엄마도 모든 상황을 즉시 해결해 주기보다는 아빠와 아이가 연결될 시간을 조금씩 남겨두는 게 필요합니다. 아이가 엄마를 찾을 때 "엄마 금방 와. 아빠랑 자동차 놀이하고 있자"처럼 짧고 분명하게 말해주고 실제로 돌아오는 경험을 반복하면, 아이는 "엄마가 사라져도 다시 온다"는 대상영속성을 몸으로 배우게 됩니다.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에서도 설명하듯, 이 시기의 분리불안이 일상생활을 크게 방해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대부분 발달 과정의 일부로 이해하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이가 아빠를 밀어내고 엄마만 찾는데, 아빠와 애착이 문제가 있는 건가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아빠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아빠와 함께한 반복적인 일상 경험이 아직 충분히 쌓이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억지로 안으려 하기보다 목욕 후 로션 바르기나 자기 전 책 읽기처럼 작고 예측 가능한 역할부터 꾸준히 맡아보세요. 시간이 걸리지만 분명히 달라집니다.
Q. 엄마가 없을 때는 잘 노는데 엄마가 있다가 사라지면 더 심하게 우는 이유가 뭔가요?
A. 이건 분리불안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엄마가 처음부터 없으면 아이는 그냥 없는 상황에 적응하지만, 있다가 사라지면 대상영속성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아이에게는 진짜로 '없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엄마가 떠날 때 "금방 올게"라고 짧고 분명하게 말하고 실제로 돌아오는 경험을 반복해주면 아이가 점차 안정됩니다.
Q. 분리불안이 너무 심한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대부분의 분리불안은 정상 발달 범위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집 생활을 거의 못 하거나, 복통·두통·수면장애가 반복되거나,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강한 분리 거부가 지속된다면 전문가 상담을 고려하는 게 좋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에 따르면 분리불안장애의 유병률은 아동청소년 중 약 4% 수준으로, 일반적인 분리불안과는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아이가 엄마를 찾을 때 "그만 울어"라고 하면 안 되나요?
A. 되도록 피하는 게 좋습니다. 아이는 아직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울음과 매달림으로 불안을 표현하는 것인데, "그만 울어"는 아이에게 감정이 거부당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엄마랑 떨어지기 싫었구나"처럼 감정을 먼저 읽어주고, 그다음에 상황을 안내해주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결론
아이가 엄마에게만 매달리는 시기는,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 한가운데 있을 때는 정말 힘듭니다. 특히 아빠 입장에서는 서운하기도 하고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하지만 확신을 주고 기다려주면 아이는 정말 잘 자라납니다. 엄마가 사라져도 다시 온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고, 아빠도 자신을 안정시켜 줄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쌓아가면서, 아이는 서서히 더 넓은 관계 안에서 안정감을 찾아갑니다. 지금 이 시기를 버티고 있는 부모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건, 아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잘 크고 있다는 겁니다.
참고: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HealthyChildren.org, "How to Ease Your Child's Separation Anxiety" / NHS, "Separation Anxiety" / 학부모 i-누리, "영유아 발달 신호에 맞춘 양육 첫걸음: 아이 발달, 한 걸음 더" /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분리 불안 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