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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밥을 먹다가 국물이 옷에 튀었습니다. 그 순간 36개월 첫째가 보인 반응은 짜증 섞인 울음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어, 흘렸네. 조금 있다가 갈아입자"라고 했는데, 돌아보니 그때 행동 교정만 했지만 어쩌면 그때 감정 교육을 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픽사 영화 인사이드아웃을 보며 막연히 공감했던 장면들이,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 현실을 잘 표현한 작품이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정 발달, 왜 저절로 되지 않는가
인사이드아웃에는 기쁨, 슬픔, 불안, 혐오, 분노라는 다섯 가지 감정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저는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36개월과 21개월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다 보니, 그 영화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알게 됐습니다.
인간에게는 기본 정서(basic emo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기본 정서란 행복, 슬픔, 불안, 혐오, 분노처럼 학습 이전에 생물학적으로 내재된 감정 반응을 말하며, 생존을 위해 진화적으로 형성된 감정 체계입니다. 미국 심리학자 폴 에크먼(Paul Ekman)이 제안한 이 개념은 문화권을 초월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주목받아 왔습니다.
문제는 이 기본 정서가 있다고 해서 감정 표현이 자동으로 성숙해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젓가락질도, 선 긋기도 가르쳐야 하듯, 감정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처음엔 조금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정말 맞는 말입니다. 첫째가 불편한 상황에서 물건을 던지거나 짜증을 폭발시킬 때, 저는 늘 "그러면 안 돼"라고만 했습니다. 그 행동 뒤에 "속상하다", "억울하다"는 감정이 있다는 걸 같이 이름 붙여주지 않았던 겁니다.
정서 지능(EQ, Emotional Quotient)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정서 지능이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하며 조절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학업 성취를 예측하는 IQ와 달리, 정서 지능은 사회적 관계의 질과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핵심 역량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아동학회).
생각과 마음, 부모가 먼저 구별해야 한다
제가 이 부분에서 가장 크게 반성했습니다. 아이가 "선생님 싫어, 유치원 안 갈 거야"라고 말할 때, 그 말 뒤에는 "속상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동안 아이의 말에만 반응했지, 그 말이 담고 있는 감정 상태를 따로 꺼내서 이름을 붙여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생각과 마음은 서로 다른 영역입니다. "선생님이 나를 싫어하나?"는 생각이고, "그때 되게 속상했어"는 마음입니다. 이 둘을 구별해서 아이와 대화하는 것이 정서 발달을 돕는 핵심입니다. 사고 능력과 정서 능력이 균형 있게 발달해야 한다는 것인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생각은 가르쳐야 한다고 알면서 마음은 그냥 저절로 크는 줄 알았으니까요.
아이가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려면 부모가 먼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감정 모델링(emotion modeling)이라고 부르는 이 방식은 부모가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행동을 통해 아이가 그것을 관찰하고 내면화하는 학습 과정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머니가 자주 이야기를 나눠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는 걸 보면, 그게 얼마나 오래 남는 경험인지 느껴집니다.
부모가 일상에서 감정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가 불편한 반응을 보일 때, 행동 교정보다 감정 이름 붙이기를 먼저 한다
- "속상했겠다", "억울했겠네"처럼 감정을 언어로 대신 표현해 준다
- 부모 자신도 "엄마 지금 피곤해서 조금 예민해"처럼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말한다
- 긍정 감정은 충분히 크게, 부정 감정은 있는 그대로지만 절제해서 표현한다
마지막 항목이 특히 중요합니다. 1만큼 화가 났는데 100만큼 표출하면 그건 아이에게 공격으로 다가옵니다. 화를 내야 할 때 내는 것과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21개월 둘째와 36개월 첫째,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것
제가 직접 써봤는데, 아이의 짜증에 "어 흘렸네, 갈아입자"라고만 말하던 것을 "옷에 흘려서 기분이 나빴겠다. 찝찝하지?"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반응이 달랐습니다.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지만, 첫째가 잠깐 멈추는 순간이 생겼습니다.
둘째는 요즘 서운해하거나 미안해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1개월인데 벌써 그런 감정 신호가 오는 것을 보면, 이 시기부터 감정 언어를 같이 배워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합니다. 감정 발달은 나이에 상관없이 오늘 하루 한 가지씩 노력하면 어제보다 나아진다는 말이, 아이뿐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국내 연구에서도 부모의 감정 코칭 수준이 아동의 정서 조절 능력과 또래 관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육아정책연구소). 감정을 가르치는 일이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저녁 아이가 울 때, 왜 우는지 행동 뒤의 감정에 이름을 하나 붙여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책도 읽고 영상도 찾아보는 부모라면 이미 반은 온 겁니다. 남은 반은 그걸 일상의 언어로 꺼내는 연습입니다. 저도 지금 그 연습 중에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육아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치료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