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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둘째가 말이 늦기 시작했을 때 "첫째도 잘했는데 둘째도 곧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36개월 첫째와 21개월 둘째,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그 안일함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 글은 같은 걱정을 하고 있는 부모님들과 제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 씁니다.
첫째와 달랐던 둘째, 그 차이가 주는 불안
첫째는 21개월에 주변 어른들이 "쟤 말 너무 잘하는 거 아니야?"라고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둘째가 비슷한 월령이 됐는데도 웅얼거림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비교가 자연스럽게 됐고, 걱정도 커졌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보면서 처음 알게 된 개념이 '발달의 이정표'입니다. 여기서 발달의 이정표란, 아이의 성장이 1단계에서 2단계, 3단계로 순차적으로 올라가는 흐름을 말합니다. 갑자기 1단계에서 4단계로 건너뛰는 경우는 없다는 뜻입니다. 말이 터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있었고, 저는 그것을 무심코 지나쳤던 겁니다.
신생아 때 엄마 목소리에 반응하는 것, 생후 2~3개월의 쿠잉(Cooing), 즉 옹알이 이전단계의 목 울림소리, 3~4개월부터 시작되는 배블링(Babbling), 다시 말해 모국어 억양을 따라 하려는 옹알이까지 이 모든 것이 비구어적 의사소통의 출발점입니다. 여기서 비구어적 의사소통이란 말소리가 아닌 눈 맞춤, 손짓, 제스처, 표정 등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제가 돌아보니 둘째는 이 부분들이 나름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하지 마"나 "기다려" 같은 말에 조금씩 반응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도 8개 정도 시도합니다. 그걸 확인하고는 조금 안심됐습니다.
24개월 영유아 검진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아기 언어발달에 대해서 찾아보니 처음 확인할 수 있는 시기가 이때 영유아 검진이라고 합니다. 18~24개월 영유아 검진은 단순한 키·몸무게 체크가 아닙니다. 이 시기는 수용 언어와 표현 언어를 함께 점검하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수용 언어란 아이가 타인의 말을 얼마나 이해하는지를 나타내는 능력이고, 표현 언어란 아이가 자신의 의사를 말이나 소리로 직접 드러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18~19개월 검진에서는 수용언어 중심으로, 22~24개월로 갈수록 표현 언어 항목의 비중이 늘어납니다.
꽉 채운 24개월 기준으로 아래 항목들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엄마', '아빠' 외에 8개 이상의 단어를 말할 수 있는가
- 그림책 속 사물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가
- 정확하지 않아도 두 단어로 된 문장을 따라 말하는가
- '이것', '저것' 같은 지시 대명사를 사용하는가
이 검진에서 '언어 심화 권고'가 나왔다면 단순히 언어치료를 받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언어 평가를 통해 수용 언어와 표현 언어가 또래 대비 어느 퍼센타일에 위치하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평가 결과 하위 10% 이하로 나온다면 언어치료를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저는 솔직히 병원을 잘 신뢰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조금 더 기다리면 말하겠지"라는 주변의 말을 들으면서 흔들렸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 2~3세에 언어발달이 느렸던 아이들을 추적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60% 이상은 학령기가 되면 또래 수준을 따라잡지만 나머지 40%는 그렇지 못한다고 합니다(출처: 국립특수교육원). 우리 아이가 60%에 속할지 40%에 속할지, 기다리면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36개월이 지나면 더 이상 기다리면 안 되는 이유
제 경험상 이 부분이 가장 간과되기 쉽습니다. 만 3세가 지나면 "우리 애는 언어만 늦어요"라는 말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집니다. 언어 발달은 인지, 사회성, 정서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느린 아이들은 자조 능력, 사회성, 인지 발달도 함께 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뇌 가소성이란 뇌가 외부 자극에 반응해 스스로 구조를 바꾸고 기능을 발달시키는 능력을 뜻합니다. 언어를 담당하는 뇌 반구가 가장 활발하게 형성되는 시기는 생후 1년 전후입니다. 만 1~2세에 주는 언어자극과 만 3~4세 이후에 주는 언어자극은 뇌에 미치는 영향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른바 '언어 발달 골든 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출처: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36개월에 언어치료가 필요한 신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부모를 포함한 타인이 아이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
- 3~4개의 낱말을 의미 있게 연결하여 말하지 못하는 경우
- "기저귀 가져와서 바구니에 넣어"처럼 두 단계 지시를 따르지 못하는 경우
- "어디"라는 질문에 말이나 손짓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
- 표현 어휘가 50개 미만인 경우
저도 영상을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가 말을 못 하면 답답함이 쌓이고, 그게 행동으로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밀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늘어나는 것이 사실 언어 표현의 한계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말을 못 하는 게 말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저는 요즘 밤마다 아이 언어발달에 좋다는 하루 20~30분씩 책 읽어 주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힘들다는 핑계로 TV나 영상을 틀어주는 날이 많았습니다. 작은 변화지만, 둘째가 요즘 들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행동이 늘고 웅얼거림이 조금씩 다양해지는 게 느껴집니다.
걱정이 있다면 혼자 안고 있지 마시고, 24개월 영유아 검진을 꼼꼼히 활용하시길 권합니다. 주변의 "좀 더 기다려봐"라는 말보다, 검진에서 나온 결과가 훨씬 신뢰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아이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기다리는 것이 미덕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아이의 언어 발달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은 반드시 소아과 전문의나 언어재활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