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박사 학위 소지자 세 명 중 한 명이 이미 무직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무서웠습니다. 저도 아이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 "그래도 좋은 대학은 가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튀어나왔으니까요. 근데 그게 정말 맞는 생각인지, 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서 계속 의심이 갔습니다.
사교육이 정말 기초를 만들어줬을까
일반적으로 사교육을 많이 시키면 학습 기초가 탄탄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었는데, 막상 제 경험을 되짚어보면 좀 달랐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성적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제 실력이었냐 하면 솔직히 아니었습니다. 학원에서 미리 배우고 갔으니 학교 수업이 복습처럼 느껴졌던 거죠. 정작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만들기를 했던 것, 친구들과 놀았던 것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진짜 공부는 학원에서 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혀버렸던 겁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순간 성적이 뚝 떨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가 분명합니다. 선행 학습으로 쌓아올린 점수는 결국 사고의 연장성이 없었던 거였습니다. 학원이 채워준 것은 당장의 정답이었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아내와 "사교육은 최소한으로 하자"고 합의하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실제로 AI 리터러시(AI Literacy)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는 더 선명해집니다. 여기서 AI 리터러시란 AI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를 도구로 활용하며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AI가 12분 만에 시험을 만점으로 풀어내는 시대에, 12년을 들여 만점을 향해 달려가는 방식이 경쟁력이 될 수 없다는 건 이제 팩트에 가깝습니다.
회복탄력성이 성적보다 더 오래간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으면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회복탄력성이란 실패나 어려움을 겪은 뒤 다시 일어서는 심리적 복원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냥 "멘탈이 강하다"는 말과는 조금 다릅니다. 훈련으로 키울 수 있고, 환경이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저는 36개월, 21개월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 어려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는 분명히 보입니다. 형이 뭔가 안 풀릴 때 얼마나 빨리 다른 방법을 찾는지, 동생이 넘어졌을 때 울기 전에 잠깐 버티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이들의 버티는 힘은 성적이나 학원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자랍니다.
이 회복탄력성이 왜 지금 시점에 중요하냐면, 앞으로 직업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출처: 세계경제포럼(WEF) 미래 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체 직업의 약 23%가 구조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 번 선택한 직업이나 전공이 평생을 보장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고, 중간에 무너지더라도 다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힘이 경쟁력이 됩니다.
성적이 좋은 아이가 고등학교까지는 앞서 나가다가 사회에 나와서 첫 실패에 무너지는 경우를 주변에서 적지 않게 봤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아이 문제가 아닙니다.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해볼 기회 자체가 없었던 환경의 문제입니다.
- 회복탄력성은 실패 없는 성공 경험으로는 절대 길러지지 않습니다.
- 꿈을 꾸고, 좌절하고, 다시 방향을 바꾸는 과정 자체가 훈련입니다.
- 부모가 안전한 보금자리가 되어줄 때, 아이는 세상으로 나갔다 돌아올 수 있습니다.
미래리터러시,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 경쟁력이다
미래 리터러시(Future Literac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싶은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예측은 AI가 훨씬 잘하니까, 사람은 방향을 정하는 쪽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 개념이 저한테는 꽤 낯설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받은 교육은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는 훈련이었으니까요. "왜?"라는 질문을 하면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풀어"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제 경험상 이 패턴이 고등학교 이후 사고력의 한계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유네스코(UNESCO)는 21세기 교육의 핵심 역량으로 비판적 사고, 창의성, 협업, 소통 능력을 꼽습니다(출처: UNESCO 교육 분야). 이 네 가지를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정답'이 없는 영역입니다. 기준이 하나가 아니고,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들입니다. AI가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정답을 뽑아내는 동안, 사람은 메타러닝(Meta-Learning) 방식으로 스스로 학습 방법을 조정하며 목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딥러닝이 "엄청난 양을 외우고 패턴을 찾는 것"이라면, 메타러닝은 "내가 왜 이걸 배우는지 알면서 배우는 방식을 스스로 고르는 것"입니다.
네 살짜리 아이들은 하루에 약 300번 질문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저희 첫째도 요즘 "왜요?"를 달고 삽니다. 솔직히 이게 예상 밖으로 에너지를 많이 씁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귀찮게 여기는 순간, 미래 리터러시의 싹을 제가 직접 꺾는 게 되는 겁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인성이 실력인 이유, 유니크가 경쟁력이 되는 구조
인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보통 도덕 교과서 냄새가 납니다. "착해야 한다", "남을 배려해야 한다" 정도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일반적으로 인성은 성적과 별개의 영역, 또는 성적이 안 좋을 때나 필요한 덕목으로 여겨집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이걸 "인간 고유의 특성(Human Specific Traits)"으로 다시 정의하면 달라집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복제할 수 없는 것, 즉 공감, 맥락 이해,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하는 힘,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힘. 이것들이 바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입니다.
세계 상위 10개 명문 대학들의 입학처 안내문을 보면 예외 없이 'contribute(기여하다)'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게 우연이 아닙니다. 그 대학들이 원하는 건 점수가 높은 학생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언가에 기여할 수 있는 학생입니다. 여기서 기여란 희생이나 봉사가 아닙니다. 쓸모 있는 일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유니크(Unique)하다는 것이 왜 경쟁력이 되는지도 이 맥락에서 이해가 됩니다. 10명이 모인 팀에서 10명이 모두 같은 강점을 가지면, 각자가 기여할 영역이 겹칩니다. 반대로 10명이 다 다르면, 팀 전체의 역량이 극대화됩니다. 경쟁해서 이기는 게 아니라 아무도 나와 경쟁할 수 없는 영역을 만드는 것. 이게 AI 시대의 생존 전략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저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합니다. 남들이 좋다는 길을 따라가다가 정작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 채 어른이 되는 것. 그게 제가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학원보다는 집에서 저와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동물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는 그 시간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교육을 아예 안 시키면 학교 성적이 너무 뒤처지지 않을까요?
A. 단기 성적만 놓고 보면 사교육을 받은 아이가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선행 학습 효과이지 사고력이 아닙니다. 초중학교까지는 잘 버티다가 고등학교에서 무너지는 패턴이 여기서 나옵니다. 사교육의 양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의 양이 장기적으로 더 결정적입니다.
Q. 아이 꿈을 지지하라는데, 너무 비현실적인 꿈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비현실적인 꿈일수록 오히려 빨리 부딪히고 방향을 수정하는 연습이 됩니다. 어릴 때 꿈을 꾸고, 현실과 만나고, 다시 조정하는 그 반복 자체가 비전을 키우는 훈련입니다. 현실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세상과 부딪히면서 스스로 배우게 됩니다.
Q. 회복탄력성은 어떻게 키워줄 수 있나요?
A. 가장 기본은 집을 안전한 보금자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이가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왜 그랬어"가 아니라 "괜찮아, 어떤 일이었어?"로 받아주는 분위기가 회복탄력성의 토양입니다. 잔소리와 성적 압박이 중심인 환경에서는 아이가 실패를 숨기게 되고, 그러면 회복의 기회 자체가 사라집니다.
Q. AI 시대에 공부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건가요?
A. 공부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달라지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느냐입니다. 지식의 양을 쌓는 방식은 AI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사람은 그 지식을 어디에 왜 쓸 것인지를 판단하는 지혜 기반의 학습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합니다. 초중고 과정의 절반은 기초로서 필요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인간 고유의 능력을 키우는 데 써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결론
AI 시대 교육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도 처음엔 뭔가 새로운 것을 더 해줘야 한다는 불안감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리해보면 방향은 단순합니다. 아이 질문에 귀 기울이고, 꿈을 허락하고, 실패했을 때 돌아올 수 있는 곳이 되어주는 것. 이게 전부입니다.
저는 지금 36개월 아이의 "왜요?"에 좀 더 진지하게 답해주는 것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그게 미래 리터러시의 출발점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세상이 어디로 가든, 힘들 때 버티고 즐길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는 것. 그게 제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긴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CRxqA75_iA